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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과 몸의 변화
route4096
2025. 6. 20. 12:17
술, 처음의 유혹과 뇌의 반응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었던 어떤 누나는 술을 못하는 남자는 멋이 없다고 했다. 그 얘기로 인해 술문화에 대해 좀 알고 있었던 사촌 형에게서 술에 대한 강의를 요청했고, 그 날 내 인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던 날로 기억된다. 물로 이것은 좋은 기억일 리 없다. 술로 인한 부작용과 문제는 늘 있어 왔지만 아직도 그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술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관계의 매개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약 9억 병의 소주가 소비된다는 수치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술을 친구의 권유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다. 첫 잔은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몸 안에서는 복잡한 화학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소장에서 흡수된 에탄올은 혈액을 타고 간으로 들어간다. 간은 일정한 속도로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다시 식초산, 이산화탄소, 물로 분해한다. 하지만 분해 속도보다 섭취 속도가 빠르면 혈중 알코올 농도는 상승하고, 결국 뇌에 도달하게 된다. 이 작은 에탄올 분자는 뇌 전반에 침투하며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깨뜨린다. 특히 도파민과 **가바 수용체**의 작용을 증가시켜 쾌감과 이완을 느끼게 한다. “오늘 기분 좋아”라는 감정은 바로 뇌의 화학적 작용에 따른 결과다.
Ref) 가바 수용체(GABA receptor) :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가 작용하는 수용체. 이 수용체는 뇌의 과도한 신경 활동을 조절하여 불안, 흥분, 긴장, 스트레스 등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기분 좋은 시작, 그리고 위험한 경계
술은 불안을 낮추고, 긴장을 풀어주며, 유쾌한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한 잔 어때?”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시간과 양에 따라 급격히 반전될 수 있다. 남성 기준 2시간 이내 다섯 잔 이상, 여성은 네 잔 이상을 마실 경우 위험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운전 기준치를 넘어설 뿐 아니라 뇌의 기능을 급격히 억제하기 시작한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되며, 충동적 행동이나 공격성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알코올은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의 활동을 억제하여 기억 형성을 방해하고, 해마를 손상시켜 단기 기억의 장기 저장을 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어떻게 집에 왔지?”라며 필름이 끊긴 기억을 더듬게 된다. 이때 이미 뇌는 손상되고 있는 중이다.
Ref)**글루타메이트 수용체(Glutamate receptor) : 뇌에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가 작용하는 수용체이다. 이 수용체는 신경세포의 흥분, 기억 형성, 학습, 인지 기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반복되는 음주가 만든 뇌의 변화
술을 자주, 반복적으로 마시다 보면 뇌는 스스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응한다. 반복된 알코올 자극은 뇌로 하여금 이에 반대되는 작용, 즉 불안과 각성의 상태를 만들어내게 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을 마셔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내성’이다. 문제는 내성이 생긴 이후에도 술을 끊지 못한다는 데 있다. 술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며, 심지어 우울감과 전신권태를 경험한다. **가바 수용체**는 무뎌지고, 흥분성 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는 더욱 민감해져 발작, 떨림, 불면, 불안과 같은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금주를 할 수 있다면 1~3개월 정도가 지나면 뇌의 내성은 서서히 줄어든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희망적인 부분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참을 수 있다면 술에 대한 갈망도 대부분 사라지고 술 없이도 평상시의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다고 한다.
간, 뇌, 심장까지… 알코올의 전방위적 공격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수많은 부검 사례를 통해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고발한다. 특히 만성 알코올 중독자의 장기는 눈에 띄게 손상되어 있다. 정상적인 간은 붉은 벽돌색이지만, 지방간은 노랗게 부풀고 울퉁불퉁해져 간경변, 나아가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술은 신체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 아래은 술로 인해 장기에 미치는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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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되고, 전전두엽의 기능이 억제되며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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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알코올로 인해 부풀어오르며 수축력이 떨어지고, 결국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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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반복된 음주는 급성 또는 만성 췌장염을 유발하고, 당뇨를 동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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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간: 호흡중추까지 억제되면 호흡곤란이나 심정지 위험도 높아진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체수분량이 적고 지방 비율이 높아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진다. 여성이 더 술에 쉽게 손상되고, 회복이 어렵다는 사실은 여성이라면 주의깊게 생각해 보아야 되는 내용이다. 한국 사회는 술을 권하고, 마시는 문화를 쉽게 용인해 왔다. 직장 회식, 모임, 기념일, 심지어는 슬픔의 자리에도 술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에는 기억을 잃고, 관계가 파괴되며, 건강을 잃는 여러 비극이 숨어 있다. 어떤 후배의 경우 직장생활 초반에 술을 잘 하지 못했는데, 술을 잘 못한다고 직장상사로 부터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아직도 일을 잘하는 것과 술을 잘 마시는 것을 동일시 하는 직장상사가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직업상 완전한 금주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주기적인 금주일을 만들고 음주 횟수와 양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의학자들은 최소한 술을 마신 후 4일 이상 금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간과 뇌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우리의 술 문화, 다시 생각할 때
여러 매스미디어는 술을 마시는 것을 멋지게 포장하고 감각적으로 술을 더 마시라고 속삭인다. 금요일 비오는 오후에는 어김없이 술자리가 생겼다는 어느 후배의 고백은 현재 우리 술문화의 현주소이다.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이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술로 인해 손상된 뇌와 장기는 대부분 비가역적이며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술을 마실수록 파괴되는 것은 단지 기억력만이 아니라 삶의 균형, 관계의 소중함, 그리고 뇌와 장기들이다. 추운 날씨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시는 러시아 남성들의 사망율이 다른 나라 남성들에 비해 훨등히 높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결국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생명을 단보로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중독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음주 습관이 누적되어, 어느새 갈망과 내성, 금단과 후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음주 습관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삶의 리듬을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술이 없이 어떻게 건강한 소통을 나누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지금 부터라도 술을 줄이고 절제해야 한다. 조금씩 줄이고 조절하는 용기를 내보자. 이것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마음가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