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칸트의 산책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아는 바와 같이 칸트는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갔고, 지역 주민들은 그가 산책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시간을 맞추었다는 얘기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칸트는 깊은 사유와 철학적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확한 루틴을 실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정신의 리듬을 조율하는 장치가 되어서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매일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정감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불안, 번아웃, 분노 같은 감정적 격랑을 통제하고 정서적 안정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생각과 감정의 균형을 맞춰주는 도구로서 정서적 안정감에 많은 도움이 줄 수 있다는 여러 연구와 경험적 사례들이 있다. 아래의 내용은 이러한 자료에 기초에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이다.

1. 예측 가능성과 통제감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가장 큰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은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고, 삶에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일정한 패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10분간 스트레칭을 한다거나,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 루틴 자체가 정서적 앵커(anchor)가 되어 하루를 보다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2. 자기 신뢰감과 성취감
사람은 작더라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쌓인다. 하루하루 반복된 행동이 성취의 층을 만들고, 그 성취는 다시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특히 감정이 들쑥날쑥하거나 무기력감에 시달릴 때, "나는 오늘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감각은 의외로 큰 위로와 동력이 된다. 꾸준함은 강력한 내면의 자기 신뢰감을 길러 준다.
3. 뇌 신경 회로 강화
신경과학적으로도 꾸준함은 매우 중요하다. 반복되는 행동은 뇌의 신경 회로를 강화하고, 그 결과 감정 조절 능력 역시 향상된다. 특히 명상, 운동, 글쓰기, 악기 연습과 같은 활동은 전두엽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이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이러한 습관은 도파민 보상 시스템과도 연계되어 있어, 반복할수록 보상 회로가 안정화되며, 감정적으로도 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4. 정서적 회복탄력성 향상
꾸준한 루틴은 단지 버티는 힘이 아닌, 회복하는 힘을 기른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가 닥쳤을 때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비교적 빠르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일관된 일상과 자기조절 능력이다. 꾸준한 일상은 외부 상황이 아무리 요동 쳐도 자신을 추스리고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한다.
5. 자기돌봄(Self-care)의 방식
루틴은 자기돌봄의 실천 이기도 하다. 매일 일정량의 물을 마시거나, 산책을 하거나, 짧은 글을 쓰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습관들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루틴은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에게 특히 유효하다. 불규칙한 인간관계나 환경에 시달릴수록, 스스로 설정한 루틴이 나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준다.
삶의 흐름을 조율하는 작은 도구
루틴이 지나친 강박이나 집착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 칸트의 산책도 철학자의 고집스러운 습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철학이었다. 중요한 건 루틴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나를 잘 돌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루틴은 부담이 아니라 리듬이 될 수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루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루틴은 큰 변화도, 눈부신 성취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꾸준한 반복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우리 삶의 질서를 만들어 주는 중심축이 될 수 있다.
매일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내는 것은 세상에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와서 쉴 수 있는 심리적 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다. 오늘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