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관련된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2년 개봉한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스파이더맨]이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이 문장은 이제 단순한 영화 속 대사를 넘어, 정체성과 책임이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문장으로 자리잡았다. 영화의 흐름은 단순한 자아 확인이 아닌, 고통과 선택, 책임을 동반한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실존적 과정을 보여 준다. 영화 속 여정을 따라가며, 피터 파커가 어떻게 스파이더맨이 되었는지를 확인해 보자.
영웅의 탄생
피터 파커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만 존재감은 없고, 사랑하는 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한 소년이다. 공부를 잘 했다는 요소를 빼면, 유년시절 나와 모습과 거의 똑같다. 피터는 유전자 조작을 당한 거미에게 물린 후, 그의 일상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거미처럼 벽을 타고, 놀라운 반사신경과 괴력을 얻게 된 피터는 처음엔 그 힘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복싱 경기에서 상금을 노리고 출전하고, 삼촌 벤의 충고도 흘려 듣는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선택, 즉 강도를 그냥 보내준 일이 결국 삼촌의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피터는 자신의 힘이 가져온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전환점이다. 힘을 얻는 순간은 즐거울 수 있지만, 그 힘이 초래할 수 있는 책임은 종종 무겁고 고통스럽다. 피터는 그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 정체성 탐색의 과정
스파이더맨은 가면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가면은 피터가 세상으로부터 숨기기 위해 쓴 것 이라기보다, 자신과 맞서는 또 다른 얼굴이다.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두 인격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친구와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 가면이 필요했다. 가면 속에서 피터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싶은 사람인지, 어떤 가치에 충실하고 싶은지를 비로소 보게 된다. 그는 단순히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또한 영화는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일상적인 삶의 선택과 연결한다. 히어로로서 살 것인가, 평범한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그는 평범한 청춘의 삶을 내려놓고, 결국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 선택은 슬프지만, 명확하다. 그는 더 이상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되어야 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피터가 정체성을 탐색해 과정에서 아래의 내용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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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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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즐거움이 아니라 책임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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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의하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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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신은 도망치고 숨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서 '나는 스파이더맨 이다'로 끝나는 이 영화는 정체성에 대한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또한 단순한 성장의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유혹과 그로 인한 대가, 그리고 책임에 대한 통찰로 이루어진 내면의 순례다. 한 인간의 고통과 상실, 외로움을 끌어 안고, 마침내 타인을 위한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